참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구는 규제가 산업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법석이고, 누구는 규제를 만들어 제도권으로 편입해 달라고 아우성이다. 전자는 주로 암호화폐공개(ICO)를 추진하는 블록체인 업계, 후자는 거래소로 대표되는 암호화폐 업계 이야기다.

다소 식상할 수도 있는 규제를 화두로 꺼낸 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분리할 수 없다거나, 암호화폐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블록체인만 진흥하겠다는 정부의 모순적 정책 기조를 지적하려는 게 아니다. 블록체인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는 게 진정 규제인지, 암호화폐 거래소를 규제의 틀 안에 가두면 진짜 모든 논란이 사라질 것인지 한번쯤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규제는 권력의 다른 이름이다. 사실 정부 입장에서 규제만한 산업 통제 수단은 없다. 금융이나 통신처럼 인허가 산업일수록 더 그렇다. 규제를 틀어쥐고 있는 한 산업은 알아서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한번 맛 들이면 포기하기 어렵다는 권력이 바로 규제로부터 나온다.

규제는 또 암묵적 시장 질서를 만든다. 진입장벽이 높을수록 더 그렇다. 한번 진입만 하면 안정적인 수익이 보장된다. 누군가에게는 전봇대지만 누군가에게는 밥그릇을 지켜주는 울타리가 바로 규제다.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규제 개혁을 외치지만, 규제 하나 뜯어고치기가 ‘하늘의 별 따기'인 이유이다.

이런 규제의 속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 모두 규제 탓을 하고 있다. 정부가 ICO를 규제해 블록체인 기업들의 혁신 성장을 가로막고 있다고 이구동성으로 주장한다. 반면 암호화폐 시장의 사기ㆍ스캠 논란이나 해킹 사건 등은 거래소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이라고 역시 정부를 원망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명문화하지 않았을 뿐 우리 정부는 사실상 ICO를 금지했다. 투자자가 있는 이상 암호화폐 거래에 대한 분명한 가이드라인과 룰을 제시할 책임도 분명 정부에 있다.

그런데 다소 앞뒤가 바뀌었다. ICO 허용을 주장하기에 앞서 왜 ICO가 필요한지, ICO로 모은 자금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꼭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여야 하는지, 기존 ICT 기술로는 안되는 것인지, 실제 구현 가능한 모델인지, 투자자 보호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 구체적인 고민의 흔적이 부족해 보이는 기업들이 다수다. 블록체인과 암호화폐가 대세고 ICO로 돈이 몰린다고 하니 일단 해보자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ICO를 혼동하는 것은 아니지 의심마저 든다.

최근 들어 ICO 열풍이 다소 시들하고, 암호화폐 시장이 여전히 투기와 사기ㆍ스캠 논란으로 시끄러운 게 정말 모두 규제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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