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짐이 좋지 않다’,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조만간 대형 사건이 하나 터질 것 같다’.

요즘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에서 심심찮게 들리는 소리다.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이 생길지 조마조마하다는 것이다. 혹자는 과거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의 붕괴를 이야기하기도 한다.

1998년 초 8조원도 되지 않았던 코스닥 시가총액은 벤처 열풍을 타고 1999년 말 100조원까지 치솟는다. 이어 2000년 3월 10일 코스닥지수는 2834.4로 사상 최고치를 찍는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벤처 붐이 꺼지고 같은 해 12월 26일 코스닥지수는 52.58로 곤두박질친다. 9개월 만에 무려 2781.72포인트가 폭락한 것이다. 그리고 그해 10월 ‘정현준 게이트’를 시작으로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윤태식 게이트’ 등 일명 ‘벤처 4대 게이트’가 잇달아 터진다.

수많은 투자자가 하루아침에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그 후로 상당기간 벤처 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대체 블록체인·암호화폐 시장에 무슨 일이 있기에 이런 20여 년 전의 악몽까지 되살아나는 것일까.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아주 기우((杞憂))만은 아닌 것도 같다.

채굴형 거래소를 만들겠다며 투자자들을 모집한 '퓨어빗'이 지난 9일 갑작스럽게 홈페이지와 채팅방을 폐쇄했다. 이 거래소는 자체 암호화폐인 '퓨어코인'을 싼 가격에 사전 판매하겠다며 투자자들로부터 이더리움을 받고서는 돌연 잠적했다. 피해액은 30억∼40억원으로 추정된다.

최근 서울 강남 한 클럽에서 ‘헤미넴’으로 알려진 남성이 약 1억원 어치의 돈다발을 뿌렸다. 돈의 출처는 암호화계공개(ICO)로 모은 투자금. 업계에서는 이 남성을 포함한 일당이 ICO를 통해 3000억~4000억원을 모은 후 유흥비 등으로 탕진한 것으로 보고 있다.

얼마 전 경찰청 사이버안전국은 악성코드를 유포해 PC 6000여 대를 감염시킨 후 암호화폐를 채굴한 일당 4명을 검거했다. 이른바 '크립토재킹'(cryptojacking) 범죄가 국내에서 적발된 것은 처음이다. 그런데 피의자들의 신분이 충격적이다. 국내 암호화폐 관련 벤처 사업가, 정보보안 전문가, 쇼핑몰 및 가전 도소매업 대표 등으로 국제 해커집단이 아닌 업계를 잘아는 내부자들의 소행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 정도 사건으로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 모두를 ‘모럴해저드’로 매도할 수는 없다. 과거 벤처 붐의 붕괴 때처럼 대형 게이트가 터질 가능성도 거의 없다. 벤처 육성을 최우선 정책 기조로 삼았던 김대중 정부와 달리 현 정부는 사실상 암호화폐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은 구멍이 댐을 무너트린다. 시장이 이런 상태면 ICO 허용을 비롯해 정부의 암호화폐 정책 기조를 결코 바꿀 수 없다. 투자자들의 외면도 시간문제다. 무엇보다 한번 신뢰를 잃은 산업은 더 이상 희망이 없다.

이럴 때 일수록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는 기본, 즉 본업에 충실해야 한다. 정부나 정치권에 무엇을 요구하고 바라기에 앞서 먼저 제대로 된 서비스를 보여주기 바란다. 많은 사람들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 기술을 반신반의하는 것은 실제 체감할 수 있는 서비스가 아직 없기 때문이다. 국내 블록체인·암호화폐 업계의 보다 열정적인 기술 개발과 투명성 강화를 거듭 요구하는 이유이다.

한민옥 기자 mohan@thebch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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