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사람들에게 ‘요즘 어때요?’ 라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고개를 절래 지으며 ‘힘들어요’ 라고 대답한다. 컴퓨터 관련제품의 가장 큰 집단상가이자 유통의 중추이며 ‘컴퓨터’ 라는 단어에 자동적으로 따라붙는 용산이 왜 이렇게 변한 것일까. 

▲ 이상효 차장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다. 올해로 14째 용산 시장에 몸 담고 있는 입장에서 보기에는 ‘자연적인 흐름’ 으로 생각한다. 용산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서나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얘기다. 

■ 낮은 진입장벽, 심화되는 경쟁, 그리고 양극화

용산은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는 젊은이에게, 고졸 학력으로도 취업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정도로 진입장벽이 낮은 곳이다. 우리 생활 곳곳에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수요가 많기도 하거니와 특별한 전문성이 요구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결국 진입이 쉬운 만큼 업체의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자본주의 사회 어디나 그렇듯 과도한 경쟁이 시작됐다.

‘과도하다’는 표현이 자칫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기에 한가지 예를 들겠다. 대규모 법인 사업자는 논외로 하고 용산 전자상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소규모 영세 개인사업자 에 부과되는 세금은 이들이 최소 10%의 마진을 취한다는 전제 하에서 책정되어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통상적으로 컴퓨터 관련 소매업체들의 마진율은 5% 남짓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뜩이나 수익이 적은 업체 입장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과세가 가혹하게까지 느껴진다.

이런 문제는 어디에서 출발했을까. 단 몇 분만 검색하면 어느 업체가 더 저렴한지를 손쉽게 알 수 있는 가격비교 시스템의 존재로 업체간 가격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이다. 또 요즘 사회문제로 대두되는 양극화 현상도 이를 부추기고 있다. 골목 슈퍼마켓이 점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자본의 SSM 입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데, 용산에서도 이러한 일은 비슷하게 벌어지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대형 몇 개의 대형 업체가 자본력을 바탕으로 제품을 대량 매입해 가격 경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가격을 낮추는 일이니 소비의 관점에서는 환영할 일이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다. 하지만 몸집이 커질 대로 커진 대형 업체들이 그들에게 제품을 공급하는 도매 업체들에게 소위 말하는 ‘갑질’을 행하며 동반성장과는 거리가 먼 길을 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다. 

■ 용산 업체 스스로의 자정활동, 전문성 확보

몇 년 전 모 방송사가 지금은 없어진 용산터미널전자상가의 ‘손님 맞을래요?’ 사건을 보도한 적이 있다. 당시에 용산은 마치 사기꾼의 무대인 양 비춰졌고, 대중은 ‘용팔이’ 라는 단어를 써가며 용산을 질타했다.

하지만 당시 취재기자가 의도적으로 해당 업체를 지속적으로 도발하여 촬영된 것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해가 풀렸다. 그러나 대중에게 심어진 부정적인 인상은 쉽게 걷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방송은 이 같은 사실을 밝히기는 커녕 멀쩡하게 게임중인 PC방의 전원을 차단하면서 ‘아이들이 게임 때문에 폭력적으로 변했다’는 잘못된 보도를 이어갔다.

결국 용산 스스로 ‘드래곤페스티벌’과 같은 행사를 통해 용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개선하고, 호객행위를 하지 말자는 캠페인을 벌여가며 용산의 과거를 되찾고자 애쓰고 있다.

물론 용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몇 건의 보도 때문만은 아니다. 세금계산서를 사고 파는 자료상 문제나, 고의부도 등의 문제도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최근에는 업체들 스스로의 인식 개선과 각종 제도의 개선에 힘입어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고의 부도의 조짐이 있는 업체에 대해서 업체들 스스로 정보를 공유하고 견제하며, 신용카드 사용이 일반화 되면서 세금계산서가 남는 경우가 줄어들게 되어 자료상 문제도 줄어들고 있다.

한편에서는 오로지 남보다 싼 가격만을 무기로 내세우던 방식을 탈피하고, 신뢰를 함께 판매하는 등 스스로 살길을 모색하고 있다. 큰 업체 입장에서는 시도하기 어려운 갖가지 서비스를 내세우고 이를 실행하는 업체들을 보면서 용산의 앞날이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래도 여전히 컴퓨터는 용산

건국이래 최대 규모의 개발 사업이 될 것이라던 용산 개발사업은 몇 년째 황량한 공터만 보여주고 있는데, 십여 년 전 약 6,000개에 이르던 용산의 컴퓨터 관련 업체가 현재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는 소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과거에 비해 용산을 찾는 발길이 줄었다는 것이고 용산이 험난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업체 스스로의 인식 변화와 노력, 용산을 바라보는 대중의 인식 개선, 각종 제도의 현실화 등이 지속적으로 이뤄진다면 과거만큼의 호화로움을 되찾지는 못할지라도 ‘컴퓨터는 용산’ 이라는 집단상가의 지위는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