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투데이 이기성 기자] 지난해 국민은행 주전산기 선정을 둘러싼 잡음과 대규모 사업·인력 축소 등으로 내홍을 겪은 IBM의 상황이 올해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1967년 국내에 진출한 한국IBM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국내 IT 산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굴지의 기업이다. 지금은 옛말이 됐지만, 한때 IBM은 대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IT 기업의 하나로 손꼽히는 등 명실상부한 국내 IT 기업의 대표주자였다.

그러나 최근의 IBM은 그동안 고객들에게 쌓아왔던 신뢰를 잃고, 지난해 영업부진으로 인해 사상 최악의 실적을 기록하는 등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특히 최악의 실적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벌어들인 순이익의 2.5배에 달하는 금액(4000억원 이상)을 본사로 송금한 사실까지 알려져 여론의 비난이 쏟아졌다.

 
관련 업계에서는 단물이 아니라 영혼까지 쪽 빨아먹겠다는 본사의 행태를 지적하면서, 반전 포인트가 없는 한국IBM의 추락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 불명예 퇴진한 회장, 경영진 연쇄 이탈 우려

최근 한국IBM의 눈에 띄는 내홍은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퇴진이다. 지난달 15일 셜리 위 추이 회장이 퇴사를 알린 데 이어 같은 시기 차기 한국IBM 최고경영자(CEO)로 거론되던 이장석 부사장까지 회사를 떠나기로 했다.

셜리 위 추이 회장의 경우 국민은행 사태의 원인제공자로 지목되기도 했고, 재임 기간 중 대규모 구조조정, 무리한 본사 송금, 고객 신뢰추락 등 공공연한 이슈메이커였기 때문에 충격이 덜한 편이다.

그러나 이 부사장의 경우 1986년 한국IBM에 입사해, 29년간 근무하면서 차기 최고경영자(CEO)로까지 거론되어 온 인물이라 관련 업계에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켰다.

이 부사장은 재임기간 동안 글로벌테크놀로지서비스·제너럴비즈니스·아시아태평양 지역 인프라스트럭처솔루션 등 다양한 사업 부문을 이끌며 승승장구한 고위 임원이다.

이 부사장의 구체적인 사직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최근 실시한 감사가 영향을 미쳤다는 소문부터 본사가 인적쇄신 차원에서 사퇴를 종용했다는 소문까지 다양한 추측을 낳고 있다.

2013년부터 부쩍 실적이 악화되기 시작한 한국IBM은 계속해서 구조조정을 시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핵심 임원까지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최후의 보루인 인적 동력마저 연쇄적으로 이탈하는 것이 아니냐는 내부자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 본사의 유통구조 개선이 오히려 독?

IBM 본사는 한국에 인적쇄신을 강조하는 것 외에도 유통사에 재고물량이 남지 않도록 만들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한국IBM은 올 초부터 서버, 스토리지 등 기업용 하드웨어 제품을 대상으로 유통업체들의 재고를 파악하고, 소진현황을 관리해 출하 물량을 대폭 줄였다.

그러나 한국IBM은 그간 하드웨어 유통업체들이 가져가는 재고를 모두 매출로 집계하고 있었던 터라, 본사의 방침으로 인해 되려 매출이 급감하는 결과를 떠안았다. 물론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재고 부담을 덜 수 있게돼, 그동안 불합리한 유통 관행을 바로잡겠다는 본사의 방침에 대해 환영하는 모습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한국IBM이 유통업체 공급분으로 발생하는 매출이 30% 가까이 된다면서 사실상 매출의 3분의 1가량이 증발한 셈이라고 말했다. 또한 유닉스 서버•메인프레임 등 주요 하드웨어의 매출이 급감하면서 스토리지(올플래시 포함) 등 기타 하드웨어 매출까지 동반 하락하고 있는 것이 현재 한국IBM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글로벌 혁신 사업이 한국IBM의 돌파구?

한국IBM은 경영진 퇴진이나 실적 부진설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지속적으로 IBM이 글로벌 시장에서 진행하고 있는 각종 협력 사안이나 미래 혁신 사업에 대한 언론 홍보의 강도를 높여가고 있다.

▲ IBM의 미래를 이끌 것이라 말하는 인지컴퓨팅 왓슨
한 예로 IBM은 인공지능 플랫폼 왓슨에 대한 소식을 끊임없이 전하고 있다. 왓슨은 기본적으로 머신러닝 기술에 기반한 인지컴퓨팅용 클라우드 시스템이다. 패턴을 알려주면 왓슨은 거기에 따라 가설을 세우고 결과를 이끌어낸다. 일본 소프트뱅크와는 기술 개발을 통해 일본어로 말하고 생각하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구체적인 계획까지 나왔다.

그러나 왓슨 플랫폼은 아직까지 한국어는 지원하고 있지 않고, 구체적인 사례를 논하기에는 인지컴퓨팅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아직 이르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한국에서도 사업에 속도를 낸다거나 기대한다는 메시지를 전할 뿐 구체적인 계획을 언급하지 않고 있는 것도 문제다.

뿐만 아니라 애플, 페이스북, 페이스북, 트위터 등과 데이터분석 분야에서 긴밀한 관계를 맺고, 혁신적인 맞춤형 기술을 개발한다는 계획을 밝히긴 했으나, 이 또한 한국IBM의 성장동력이라 말할 순 없기에 현재 위기를 타개할 뚜렷한 돌파구는 아직 없는 것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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