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명 주소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체계의 우편 번호 주소가 2015년 8월부터 공식 사용되기 시작했다. 도로명 주소와 새로운 우편 번호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미지근 하다. 심지어 액티브X와 함께 대한민국에서 없어져야 할 사회악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의 글도 SNS 상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로명 주소는 불필요하게 예산을 낭비한 ‘개악'일까?

■집 찾는게 용하지 – 지번 기반의 주소 체계

▲ 김병철 스마일서브 대표
예전에 사용하던 지번 주소는 한 마디로 체계가 없었다. 겪어본 사람은 지번 주소 체계가 정말 엉망진창이었다는 것을 안다. 대학 시절이던 1987년 선거 때 공정 선거 감시인단에 참여해 투표용지를 유권자에게 배포하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당시 맡은 지역은 서울 용산구 효창동이었다. 지번 주소를 일일이 확인해 투표용지를 전달하는 일은 정말 고역이었다. 며칠 밥도 제대로 못 먹어 가며 배달했지만 다 전달을 못 했다.

그 이유는 지번을 찾아가는 것이 난수표에서 짝 찾기랑 다를 게 없을 정도로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집을 새로 짓거나 지번을 분리할 때마다 주소가 중구난방식으로 매겨지다 보니 규칙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다 보니 지번을 찾아가는 것은 보물찾기와 같았다.

IMF 후 취로 사업의 하나로 전자 지도 사업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지도 데이터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GPS와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대중화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선거철만 되면 공무원들이 주소 찾아다니느라 헤맸을 것이다.

■주소 체계가 엉망인 나라에서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빨리 발전한 이유

분명 지번 주소 체계는 바꿀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좀 더 일찍 해야 했다. 도로명 주소는 10년 전에 나왔다면 전 국민의 환영을 받았을 것이다. 특히 택시 기사, 택배 기사, 배달원처럼 매일 같이 새로운 목적지를 찾아다녀야 하는 이들은 두 팔 벌려 환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적절한 시기를 놓쳤다. 네비게이션 시스템뿐 아니라 스마트폰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건 자유롭게 찾아다닐 수 있는 시대가 되어서야 도로명 주소를 내놓았다.

네비게이션 시스템은 주소 체계가 갖는 수준 차를 일거에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었다. 과거 네비게이션 시스템이 대중화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각국의 주소 체계의 수준 차를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이나 대만과 같이 주소가 적힌 메모만 내밀면 택시 기사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가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손짓 발짓 해가며 설명해야 겨우 택시 기사가 목적지가 어디인지 이해하는 나라도 있었다. 주소만 보고 알아서 택시 기사가 목적지를 찾아가는 나라는 모두 도로명을 기준으로 주소가 체계적으로 관리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처럼 복잡한 지번 체계를 쓰는 나라에서도 택시 기사들이 길을 잘 찾는다. 네비게이션 시스템 덕이다.

2015년 현재 대한민국 택시에 네비게이션이 없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가? 요즘 기사들은 보통 두 개 이상 달고 다닌다. 한쪽에는 카카오 택시의 김기사 네비게이션이 구동되고, 다른 쪽에는 실시간 교통 정보를 보여주는 네비게이션이 구동되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정리하자면 우리나라는 도로명 주소 체계가 절실히 필요한 때는 지번 주소 체계를 쓰다,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한 시점에 도로명 주소로의 대대적인 전환을 꾀한 것이다. 물론 행정 측면에서 도로명 주소가 갖는 이점은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필자와 같은 일반 국민 입장에서는 이미 머릿속에 각인된 기존 주소 대신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주소를 쓴다는 것이 오히려 더 불편할 따름이다.

국민 대부분은 네비게이션 덕에 길 찾는 데 더는 어려움을 격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주소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고, 오히려 혼란만 커지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이미 만들어 놓은 도로명 주소 체계를 찬밥 덩어리로 놔두어야 할 것인가? 분명 말하지만 도로명 주소 체계가 갖는 이점은 크다. 다만 일반 국민이 느끼는 전환의 불편을 줄여줄 방법은 누군가 제시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조심스럽게 한 가지 제안을 해보려 한다. 모든 이의 손에 스마트폰이 있는 시대란 점을 떠올려 보자. 도로명 주소는 사람의 눈높이에서 직관성이 높다. 그렇다면 시대가 달라졌으니 기계 눈높이에서 직관성을 높여주면 어떨까? 그렇다 네비게이션에서 쉽게 쓸 수 있는 그런 사용성을 제공한다면 제도로 강제하지 않아도, 각종 캠페인에 헛돈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도로명 주소와 우편 번호 사용이 늘 것이다.

■도로명 주소의 장려 방안  – 네비게이션에서 쉽게 쓸 수 있는 방법?

필자의 제안은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사용할 때 사용자 간 또는 장치 간 쉽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도록 하는 도로명 주소 체계를 숫자 코드화 하는 것이다. 실제 네비게이션 시스템을 써보면 주소 입력에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목적지 주소를 물어보거나 알려줄 때 그렇게 편리하지 않다.

한글은 과학적인 언어다. 하지만 대화를 주고받을 때 모음을 구분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다. 예를 하나 들자면 필자가 거주하는 아파트 이름은 베르빌이다. 택시 기사에게 베르빌로 가자고 하면 이를 네비게이션에 입력할 때 ‘베’인지 ‘배’인지 되묻곤 한다. 도로명이나 이름이 아니라 집 주소를 숫자로 택시 기사에게 불러줄 수 있다면? 더 쉽고 빠르게 주소를 묻거나 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네비게이션에 입력할 때도 오타도 적을 것이고, 입력 시간도 짧아질 것이다.

그렇다면 도로명 주소를 어떻게 숫자 코드화할 것인가? 가장 쉬운 방법은 새 우편 번호 체계를 활용하는 것이다. 새 우편 번호는 도로명 주소를 기반으로 한다. 따라서 이를 연계하여 숫자 코드화 하면 도로명 주소를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다.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다음은 고양시 덕양구의 새 우편 번호와 도로명 주소다.  새 우편 번호는 블록 단위로 운영된다고 한다. 가령 10546을 사용하는 우편 번호는 동일 블록 내의 4개의 도로가 다른 도로명 주소(간절1로, 간절5로, 간절로, 간절앞들2로)가 포함된다. 따라서 이를 숫자 코드화 하면 10546-01-,  10546-02-, 10546-03-, 10546-04-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런 방식으로 숫자 코드를 부여한 다음 그 뒤에 번지수를 써넣으면 도로명 주소를 깔끔하게 숫자로만 표현할 수 있다. 예로 든 주소를 숫자로 바꾸어 본다면 간절 1로 35호는 10546-01-035로 바꿀 수 있다. 간절 1로 77호의 경우 뒷자리만 바꾸면 된다. 즉, 10546-04-077이 된다.

■변화 관리 차원에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

도로명 주소를 숫자 코드화한다는 생각은 필자의 개인적인 주장이다. 필자는 새 주소 체계가 갖는 과학적, 행정적, 제도적 특징과 장점을 잘 모른다. 다만 새로운 것으로의 전환에는 늘 잡음이 일어난다. 대안 없는 비판보다는 무엇이 되었건 아이디어를 모아 슬기롭게 새로운 체계로의 전환을 했으면 하는 바람에 본 컬럼을 통해 ‘숫자’를 이용하는 아이디어를 제안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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