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엄 유료 매체 KIPOST 에 2016. 2. 25 실린 기사입니다>

 

혁신은 패자로부터 시작된다. 기존 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인식하고 이를 고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다.

반면 승자는 보수적으로 변하기 쉽다. 기존 방식으로 승리했으므로 변화에 대한 욕구가 별로 없다.

그동안 LG전자는 변화에 둔감하고 선두 업체를 따라하는 ‘미투(me too) 전략’을 주로 구사하는 회사 이미지가 강했다. 벤치마킹의 대상은 주로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처럼 선두업체를 발 빠르게 벤치마킹하는 패스트 팔로워(fast fallower) 역할조차 LG전자에게는 버거웠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대 들어 변변찮은 성공 한 번 못해본 LG전자가 최근 완전히 달라졌다. 스마트폰・TV・가전 등 주력 사업이 중국 업체들의 추격으로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변하지 못한다면 생존조차 장담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LG전자를 혁신으로 내몰았다.

LG전자는 축적해 온 혁신 에너지를 이번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2016에서 폭발적으로 분출했다.

당초 MWC2016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제품은 삼성전자 갤럭시S7이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그동안 갤럭시S 시리즈가 쌓아온 브랜드 가치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LG전자가 G5로 갤럭시S7에 맞불을 놓는다는 소식에 대다수 전문가들이 코웃음을 쳤다. 하지만 뚜껑을 열자 결과는 달랐다. 갤럭시S7는 전작과 크게 달라진 게 없어 실망스러운 반응을 얻었다. 반면 모듈러 디자인을 채택한 G5와 액세서리 라인업 프렌즈는 MWC2016에서 ‘신 스틸러’를 넘어 당당히 주인공 자리를 꿰찼다.

TV 시장에서도 LG전자와 삼성전자의 희비는 엇갈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그늘에 가려 LG전자는 만년 2위 신세였다. 특히 프리미엄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영향력은 LG전자와 비교하기 힘들 정도였다.

이런 구도에 균열이 생긴 것은 지난해부터다. 지난해 3000달러 이상 판매되는 프리미엄 TV 시장에서 LG전자 점유율은 24%로 전년 대비 17% 포인트 늘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TV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57% 점유율로 전년 대비 12% 포인트 하락했다.

세계 1위라는 영광은 삼성전자에 너무도 치명적인 부작용을 남겼다.

 

삼성전자는 어떻게 혁신 성장판을 닫아 버렸나

 

스마트폰 시장 초기 삼성전자는 애플에 밀려 어려움을 겪었지만, 구글이 안드로이드 운용체제(OS)를 공개하면서 성공 가도에 올라탔다. 갤럭시S 시리즈가 탄생한 배경이다. 갤럭시S가 출시된 이후 S4까지 판매량은 꾸준히 상승세를 그렸다.

터치스크린패널(TSP)∙플라스틱 케이스∙인쇄회로기판(PCB) 등을 생산하는 협력사들도 삼성전자 스마트폰 성공 덕분에 가파른 상승세를 기록했다. 협력사들은 새로운 소재부품이 개발되면 삼성전자에 제일 먼저 제안했고, 삼성전자 스마트폰 기능 혁신으로 이어졌다. 공동 개발 프로젝트도 활황을 이뤘다.

위기는 내부에서 시작됐다. 개발 부문은 외부 혁신보다는 내부에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감이 싹텄다. 삼성전자 개발자들은 과거에는 외부 및 협력사들이 제안하는 새로운 기능에 관심을 보였지만, 어느 순간 귀를 닫아버렸다.

심지어 혁신적인 제품이 있더라도 1000억원 이하 규모 회사는 신규 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세울 정도였다. 표면적으로는 중소기업이 삼성전자 스마트폰 모델당 물량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삼성전자 구매 담당자가 관리하기 귀찮다는 게 속내였다. 중소기업 규정 탓에 결제 등 여러 부문에 신경써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에 거절 당한 중소기업들은 새로운 판로로 중국 기업을 찾을 수밖에 없어졌다. 현재 중국 스마트폰 성능 개선에 한국 협력사들이 상당한 역할을 하고 있다. 화웨이에 지문인식 모듈을 공급하는 크루셜텍, 포스터치 솔루션을 제공하는 하이딥 등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와 새로 거래를 트는 협력사수가 점차 줄었다. 한 때 혁신적이었던 삼성전자 개발 조직은 관리형으로 바뀌었다.  

비용 절감과 실적이 우선시되면서 삼성전자는 카메라모듈∙플라스틱 케이스∙카메라 렌즈 등 핵심 소재부품을 내재화하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5조원 이상 투자해 베트남 공장에 메탈 케이스 가공 라인과 곡면 커버유리 라인을 구축했다.

삼성전자와 거래해온 협력사들은 기반이 무너졌다. 물량이 크게 줄어든 데다 단가인하 압박이 심화되면서 재무 상황이 악화됐다. 연구개발에 투자하기 어려운 구조가 이어졌다. 바텀업(bottom up)식 혁신 가능성이 새싹째 짓밟힌 셈이다.

지난 2014년부터 삼성전자 내부 혁신도 슬슬 한계를 드러냈다. 2014년 삼성전자는 MWC에서 갤럭시S5를 공개했지만, 기대 이하 반응을 얻었다. 당시 애플은 64비트 기반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를 아이폰에 적용해 기기 성능을 대폭 끌어올렸다. 삼성전자도 64비트 기반 엑시노스 AP를 개발했지만, 갤럭시S5 출시 일정을 맞추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64비트 기반 AP를 지원할 안드로이드 OS가 준비되지 않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결국 갤럭시S5는 32비트 AP에 고화소 카메라, 방수방진, 지문인식 등 새로운 기능을 채택한 제품으로 출시됐다. 스마트폰 시장에서 나름 주목할 만한 모델이었지만, 그간 갤럭시S 시리즈에 비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였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악수를 두고 말았다. 출고 가격을 낮춰 판매량을 극대화하려 했지만, 오히려 갤럭시S 시리즈의 프리미엄 이미지만 훼손했다.

지금처럼 중저가 스마트폰이 시장 성장을 주도하는 때라면 적절한 선택이었지만, 당시 프리미엄 스마트폰 성장 속도를 감안하면 아쉬운 판단이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5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지난해 갤럭시S6에 가용 자원을 모두 투입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양면 엣지 디스플레이와 메탈 케이스를 적용해 프리미엄 이미지 회복에 집중했다.

갤럭시S6에 대한 시장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지만, 축적해놓은 하드웨어 자원을 모두 투입해 후속 모델을 차별화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후유증이 시작됐다. 갤럭시노트5, 갤럭시S7에 이르기까지 별 다른 점을 어필하지 못하고 있다.

 

오랜 부진 끝에 ‘혁신의 문’을 연 LG전자

 

LG전자는 초기 스마트폰 시장 대응에 실패해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어왔다. 스마트폰을 틈새 시장용 제품으로 오판했고, 뒤늦게 개발한 뒤에도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 수립에 실패했다.

삼성전자와 애플 양강 구도를 비집고 들어가기는커녕 중국 업체에도 추격당하는 신세로 전락했다. 한 때 초콜릿폰으로 삼성전자를 위협했던 LG전자의 성공 스토리는 옛 이야기에 불과했다.

지난해부터 LG전자는 전열을 재정비했다. 패배주의를 벗어내고, 내외부 혁신을 장려하기 시작했다. 구본준 부회장이 독한 DNA를 강조하면서 조직 분위기를 바꿔놓았고, 지난해 조준호 사장이 사업부장으로 부임하면서 새로 조직한 체계가 효과를 내기 시작했다. LG전자 스마트폰 혁신을 위한 발판이 마련된 셈이다.

개발자들은 이름 없는 스타트업 기업이라도 LG전자 스마트폰에 혁신을 불어넣어줄 가능성이 있으면 반드시 만났다. 과거와 달리 혁신을 위해 문을 활짝 연 셈이다. 새로운 기술에는 단가인하 압박보다는 가치를 인정해줬다.

과거에는 도저히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개발자들의 획기적 제안도 수용할 만큼 개발팀이 어느 정도 유연해졌다. 새로운 것이 있으면 개발자들이 직접 찾아가 만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해 V10에 처음 적용한 하이파이 오디오 칩은 이런 노력의 결과물이다. LG전자는 이번 G5에도 하이파이 오디오 칩을 적용했다. 칩을 공급하는 ESS테크놀로지는 전문가용 오디오 솔루션을 주로 개발해왔다.

지난 2~3년 전부터 스트리밍 음원 서비스가 고급화되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용 하이파이 오디오 칩을 개발했다. 당초 삼성전자에 칩을 제안했지만, 기술의 가치를 인정해주지 않아 LG전자를 찾게 됐다. LG전자는 실무 개발자부터 임원까지 블라인드 음질 테스트를 진행한 끝에 ESS테크놀로지 칩을 채택했다.

LG전자는 하이파이 오디오를 스마트폰 마케팅 포인트로 내세우지 않았지만, 사용자 커뮤니티를 중시으로 자연스럽게 알려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후면 버튼∙듀얼 카메라∙메탈 케이스 등 별 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기능도 상당수지만, 향후 혁신을 위한 경험과 노하우로 축적됐다.

G5와 8개의 사물통신(IoT) 액세서리 라인업 프렌즈는 이렇게 탄생했다. 대다수 시장조사업체들은 G5 판매 추정치를 당초보다 20~30% 이상 상향조정하는 추세다. 외신뿐 아니라 전문가들 반응이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모듈러 구조를 처음 적용한 G5는 풀메탈 케이스를 채택했음에도 불구하고 배터리를 탈착할 수 있어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MWC2016에서 G5를 공개한 이후 LG전자 유통 딜러들은 재고량을 늘려잡는 분위기인 것으로 알려졌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