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프리미엄 유료 매체 KIPOST에 2016년 1월 22일에 게시된 기사입니다.]

삼성 그룹이 향후 자동차와 전장 부품 사업을 신성장 동력으로 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차량용 2차 전지와 소재 사업을 보유한 삼성SDI와 전장 부품 사업을 갖춘 삼성전기를 합병하려는 움직임도 이 때문이다. 향후 이보다 더 큰 규모의 계열사 및 사업 재편도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쟁쟁한 완성차 업체와 글로벌 IT 기업들 사이에서 삼성이 확실하게 자리 잡으려면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물론 전장 부품과 IT 시장은 확연히 다른 만큼 앞으로 갖춰야 할 것은 엄청나게 많다.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VD사업부처럼 부품을 대량 구매할 캡티브 마켓도 없다. 글로벌 기업과의 경쟁에 익숙한 삼성이지만, 앞으로는 생소한 시장에서 무서운 강자들과 싸워야 한다.  

삼성에 당장 시급한 것은 기술을 이해하고 개발하고 판매할 인력과 제품을 써줄 전략적인 파트너 두 가지다. 아직 삼성전자 전장부품 사업부는 뼈대만 갖춰졌을뿐 실체가 없다. 전자 계열사들은 전장 부품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컨트롤할 타워가 없다. 향후 삼성 그룹, 명확히 말하자면 삼성전자는 이 두 가지를 중점으로 향후 전장 사업이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관측된다. 

KIPOST가 자동차 및 전장 부품 사업 육성을 위한 삼성 그룹의 전략을 점검해봤다.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 성공 주역들, 전기차로 다시 한 번...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1위 기업이다. 그렇다면 삼성전자가 시스템 반도체 첫 발을 내디딘 때는 언제일까. 

여러 의견이 있지만, 상당수는 과거 진대제 사장이 진두지휘한 ‘알파 프로젝트’를 손꼽는다. 인텔 의존도를 벗어나기 위해 삼성전자는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자체 개발을 추진했었다. 프로젝트 자체는 실패했지만, 경험과 사람은 남았다. 당시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인물들이 삼성전자 내에서 시스템LSI 사업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2000년대 들어 삼성전자 시스템 반도체 사업은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애플이라는 걸출한 파트너를 잡게 된 것이다. 애플 MP3 플레이어 아이팟에 AP를 대량 공급하는 성공을 거둔다. 당시 애플 AP 설계와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두각을 나타낸 인물이 바로 정세웅 부사장과 이윤태 사장이다. 두 사람은 한 때 차기 시스템LSI 사업부장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이후 삼성전자는 애플 아이폰용 AP 파운드리를 담당하게 됐고, 자체 설계한 엑시노스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현재 삼성전자는 메모리뿐 아니라 시스템반도체 및 파운드리 시장에서도 무시못할 기업으로 성장했다. 

삼성전자가 그리는 그림은 우선 보쉬나 컨티넨탈같은 자동차 부품 업체로 자리매김한 후 전기차 등 완성차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 때 AP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AP는 차량 내 모든 전장 부품과 통신을 제어하고, 주행 정보를 빅데이터로 축적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과거 삼성전자 시스템LSI 사업을 부흥시켰던 주역들은 전기차 및 전장 부품 사업 육성을 위해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도 이 두 사람의 리더십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정세웅 삼성SDI 부사장(왼쪽), 이윤태 삼성전기 사장. /자료: 삼성전자 제공

정세웅 부사장은 삼성SDI 2차 전지 사업부장을 맡고 있다. 아직까지 삼성SDI는 LG화학에 기술과 생산 능력 모든 면에서 밀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최근 한 번 충전으로 600km까지 달릴 수 있는 고효율 배터리 셀을 공개하고 2020년 상업화한다고 밝혔다. 생산 능력에서도 약진은 두드러진다. 울산 공장에 이어 중국 시안 공장을 본격 가동하면서 생산능력을 빠른 속도로 높이고 있다. 향후에는 헝가리 공장까지 확보해 물량면에서도 LG화학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다. LG화학의 등골이 서늘해 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윤태 사장은 삼성전기 대표를 맡은 이후 전장 부품 사업 역량 강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전임 사장 시절 중단됐던 차량 카메라 연구개발을 재개하고, 적층세라믹콘덴서(MLCC)・기판 등 기존 주력 사업을 모바일에서 자동차쪽으로 무게 축을 옮기는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삼성디스플레이에서 LCD 개발실장을 역임한 만큼 차량 디스플레이 기술에도 정통한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SDI와 삼성전기가 한 회사로 합쳐진다면 두 사람의 역할에도 상당한 변화가 점쳐진다. 

 

전장 사업 역량 강화에 나선 삼성전자...비빌 언덕은 테슬라

 

삼성전자가 과거처럼 자동차으로 직행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향후 5년 동안은 차량 반도체와 전장 부품을 공급하면서 기술과 경험 축적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완성차 업체들의 견제가 심한 상황에서 삼성전자가 자동차 시장 진출을 선언하면 전장 부품을 구입할 고객은 크게 줄어든다. LG도 완성차 업체 눈치를 보면서 전장 부품 사업에만 집중한다고 누차 강조하는 이유다. 

전장 부품 사업은 모바일처럼 캡티브 마켓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당장 삼성전자가 손 잡을 수 있는 핵심 협력 파트너는 미국 전기차 업체 테슬라 정도다. 폴크스바겐 등 다른 완성차 업체들은 수급이 타이트한 2차 전지 등 일부 품목만 공급받으려 할 가능성이 높다. 

▲ 이재용 삼성 부회장(왼쪽),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 /자료: 삼성전지 및 테슬라 홈페이지

지난해 여름 이재용 부회장은 방미 기간 중 엘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만남에 공을 들였다. 당시 두 사람은 전기차 배터리뿐 아니라 차량 반도체 공급 등 밀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테슬라 신차 모델X에 일본 업체에 이어 삼성전기가 차량 카메라를 납품하는 이야기도 논의됐다. 결국 삼성전기의 기술력 부족으로 납품까지 이어지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향후 테슬라가 중저가 전기차를 출시할 때 삼성전자 전장 부품 사업에 상당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테슬라는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는 기업이지만, 애플과 달리 후발 업체들의 시장 진출을 독려하고 있다. 핵심 특허도 공유하면서 전기차 사업 진출을 유도하고 있다. 테슬라 기술 공개의 가장 수혜를 본 곳이 바로 BYD 등 중국 업체다. 

전기차 시장을 키우려면 후발 업체의 진출을 막는 것보다 우호 세력을 키워 기존 내연기관 자동차 업체들의 진입장벽을 뚫는 게 더 중요하다. 삼성전자 같은 거물급 기업이 테슬라와 손잡고 전기차 시장을 푸시한다면 충분히 돌파구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판단이다. 

삼성전자로서는 테슬라와 협력하면서 전기차 관련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다. 과거 스마트폰 시장 진출 때도 애플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핵심 부품을 공급하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축적하고 완제품 시장에서도 성공한 사례가 있다. 테슬라는 애플보다 훨씬 우호적인 파트너다. 

한 때 삼성전자가 테슬라를 인수할 것이라는 설도 나왔지만, 지금 테슬라 시총을 감안하면 현실성이 떨어진다. 

테슬라는 삼성전자와 손잡고 전기차 후방 공급망을 강화할 수 있다. 현재는 일본 협력사들을 주로 활용하고 있지만, 늘어나는 판매량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후방 공급망을 강화해 규모의 경제 효과를 달성하면 전기차 가격을 낮춰 대중화 시대를 더 빨리 열 수 있다. 이는 삼성전자 전장 부품 역량이 얼마 만큼 빨리 올라오느냐에 달렸다.

저작권자 © 디지털투데이 (DigitalToday)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